☀무지 Mooji {드높은 하늘처럼, 무한한 공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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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당신이 경험하는 것이지 당신이 아니다
우리가 살면서 경험하는 모든 불행, 불만, 고통은 우리가 누구인지 혹은 무엇인지에 대한 무지 때문이다. 인류는 자신이 육체를 가진 인간일 뿐이라는 잘못된 생각에 갇혀 살아가고 있다. 몸과 마음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것은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가리고 있는 유일한 장애물이다. 당신의 참자아를 가리고 있는 것이 바로 그 오해다.
인간은 당신이 경험하는 것이지, 당신이 아니다. 인간은 ‘인간’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반박할 여지없는 믿음 때문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하지만 인간, 혹은 에고는 그 안의 믿음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이는 단지 상상일 뿐이다.
몸이라는 공간의 유일한 거주자는
바로 순수한 ‘참자아’이며,
그것이 바로 당신이다.
나머지는 전부 가짜다.
당신은 누구인가?
참자아의 발견은 무지함의 어둠을 순수한 이해의 빛으로 탈바꿈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가장 심오하고 중요하고 근본적인 발견이다. 우리의 본성에 대한 이해와 수용이야말로 모든 것에 대한 유일한 치료제이자 삶의 진정한 목적이다.
진정한 당신은 결코 죽을 수 없다. 몸은 죽겠지만 몸이 당신의 본질은 아니다. 우리의 본질은 의식이다. 몸은 의식이 체험을 맛보는 데 필요한 매개체일 뿐이다. 진정한 당신은, 그 안에서 모든 것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순수의식이다.
당신은 인지될 수 없는 존재이다. 당신이 인지하는 그 어떤 것도 당신일 수 없다. 당신이 인지하는 것이 당신이 아니듯이, 당신의 경험은 당신이 아니다. 심지어 당신은 그런 좋거나 나쁜 경험을 당하는 대상도 아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누구일까?
멈춰서 내면을 바라보라.
현상적 마음에 쏠렸던 주의를,
실재가 아닌 모든 것 ─ 정의될 수 있고
인식될 수 있는 모든 것 ─ 이 버려진 뒤에
남아 있는 그 ‘텅 빈’ 공간으로 돌려라.
그 안에서 확인하라. 이것이 바로
나뉘지 않는 당신의 참자아다.
깨달음은 어딘가에 도착하는 일이 아니다
깨달음이란 우리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깊은 실체가 있다는 것과, 그 실체가 늘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실체가 바로 우리 자신의 참자아임을 깨닫는 것이다.
참자아를 깨닫는 것은 온갖 고생 끝에 ‘어딘가에 도착하는 일’이 아니다. 깨달음은 어딘가에 도착한다거나 무엇이 되는 일이 아니다. 이미 우리는 형언할 수 없이 위대한 참자아다.
진리는 우리 자신이다.
진리는 우리의 본성이며
우리의 존재 그 자체이다.
진리는 순수한 자아, 무한한 하나,
궁극적인 실체이며 의식 그 자체이다.
마음보다 먼저 존재해온 지켜봄의 근원,
순수한 알아차림이다.
최고의 치유는 내가 아닌 것으로부터 깨어나는 것이다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깨달으면 많은 것이 제자리를 찾는다. 당신이 진실을 찾고 있다면 많은 것을 알 필요가 없다. 필요한 것은 지식의 양이 아니라 진정한 자아를 인식하는 것이다.
당신은 의식의 빛이며 또한 이 빛을 지켜보는 자이다. 당신이 태어나지도 않았으며 소멸하지도 않을 순수의식, 즉 알아차림임을 발견할 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더 이상 당신을 괴롭히지 못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죽음의 죽음’이다.
당신은 영원히 당신 자신이다. 나머지는 오직 꿈이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자기 발견을 ‘깨어남’이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생각의 꿈에서 깨어날 때,
당신은 꿈을 꾸다 깨어난 사람처럼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될 것이다.
최고의 치유는
내가 아닌 것으로부터
깨어나는 것이다!
당신은 알아차리는 인간이 아니라 알아차림 자체다.
당신인 알아차림 안에서 모든 것이 나타나고 사라진다. 그러나 알아차림 그 자체는 어떤 현상에도 동요되지 않을뿐더러 창조된 적 없이 늘 그 자리에 있어왔다. 이 알아차림이라는 참자아의 자리에서, 당신은 의식의 드나듦마저도 알아차린다. 따라서 당신은 인식이 일어나는 의식보다도 앞선 존재이며, 형상들이 나타났다가 다시 무(無)로 흩어지는 것이 지각되는 현상계보다도 앞선 존재다.
당신은 다른 모든 것을 잃을 수 있지만, 당신 자신인 알아차림은 잃을 수 없다. 오직 알아차림만이 실재한다. 개인성은 그저 가면일 뿐이다. 이 형태는 잠시 입고 있는 복장일 뿐이다. 하지만 그 복장 안에 있는 참자아는 영원하다.
자신의 참자아가 알아차림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이해할 때, 당신은 마음의 역동적인 움직임으로부터 떨어져 중립적인 시선으로 지켜볼 수 있다. 이해타산 없이 순수하게 지켜보는 것이 참자아의 특성이다.
참된 자신인 순수한 알아차림으로 머물라.
마음이 심란해질 때면 당신이 이미 자연스럽게 이를 알아차리고 있음을 기억하라. 이를 이해한다면, 거리를 두고 이를 지켜볼 수 있다면, 당신은 즉시 그 손아귀에서 빠져나와 더 이상 마음과 동일시하지 않고 자유로워질 것이다.
마음이 작동하는 것을 단지 지켜보기만 하고 거기에 어떤 에너지도 쏟지 않는다면, 마음은 곧 조용해진다. 마음이 조용해지면 자연스럽게 순수하게 존재하는 감각만이 환히 빛난다.
일어나는 모든 일을
중립적인 시선으로 개입하지 않고
지켜보는 것을 가리켜 나는
‘현존’(Presence)이라 부른다.
현존의 힘과 함께 머물라.
그저 고요히 마음의 놀이를 지켜보라
항상 모든 것을 지켜보는
알아차림으로 머물라. 마음은
당신의 관심과 주의를 끌기 위해
모든 걸 하겠지만,
그저 그 모든 걸 알아차리는
주시자로 머물라.
문제에 집중하지 말라. 삶은 사소한 문제들을 끝없이 해결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사실 그 ‘문제-게임’은 당신의 잘못된 정체성을 계속 유지시킬 뿐이다.
그저 고요하게 모든 마음의 놀이를 지켜보는 알아차림으로 머물면서, 자신이 바로 형체 없는 궁극의 ‘주시자’임을 직접 경험하고 확인하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계속 자신의 정체성을 현상계를 ‘경험하는 자’인 에고(ego)로 여길 것이고, 또다시 평정을 잃고 익숙하지만 불안정한 개인성의 상태로 서서히 미끄러져 내려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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