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크하르트 톨레 {이 순간의 나}☀
|

생각의 주시자로 현존하라
머릿속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라. 당신의 머릿속에서 오래된 테이프처럼 몇 년째 똑같이 반복되고 있는 생각의 패턴에 가능한 한 자주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것이 바로 ‘생각하는 사람을 지켜보는 것’이다.
이것은 곧 머릿속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그걸 알아차리고 관찰하는
'주시자'로 현존하라는
의미이다.
머릿속의 목소리를 판단하거나 비난하지 말라. 그렇게 해봤자 똑같은 목소리가 뒷문을 통해 다시 들어올 뿐이다. 그리고 곧 깨닫게 될 것이다. 여기에 목소리가 있고, 나는 그 소리에 귀 기울이고, 관찰하고 있다는 것을. 이것은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알아차림이다. 그것은 마음 너머에서 떠오르는 것이다.
어떤
생각에 귀 기울일 때,
당신은 그 생각은 물론이고
그 생각의 '주시자'로서 자신을
'알아차리게' 된다. 그 순간
의식의 새로운 차원이
열린다.

에고(Ego)는
알아차리는 순간
힘을 잃고 소멸한다.
생각을 지켜볼 때, 생각 이면이나 그 밑바닥에 자리한 의식 있는 존재, 즉 당신의 '참자아'를 느낀다. 그러면 당신을 지배하고 있던 생각은 그 힘을 잃고 순식간에 가라앉는다. 마음에 동화되어 마음에 힘을 실어주는 행위를 더 이상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순간 자신도 모르게 강박적으로 이어지던 생각도 사라진다.
생각이
가라앉으며
흐름이 끊기는 순간,
무심(無心)의 공백을
경험하게 된다.

처음엔 아주 짧은 순간, 단지 몇 초에 불과하겠지만 그 시간은 점차 길어진다. 이런 공백을 경험하는 순간 당신은 내면에서 고요와 평화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항상 마음에 가려서 보지 못했던, 존재(Being)와 하나됨을 느끼는 자연스러운 상태가 시작된다.
반복 훈련을 통해
당신이 느끼는 고요와 평화는
한없이 깊어질 수 있다. 또한 내면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순수한
‘있음의 기쁨’(Joy of Being)이
미묘하게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느낀다.
이렇게 내부에서 존재와 연결되어 있을 때, 마음과의 동일시에서 벗어나 더욱 생생하게 깨어있게 된다. 당신은 지금 여기에 완전히 현존한다. 이러한 현존은 당신의 본질인 동시에 그보다 더욱 위대한 그 무엇이다.
|

|
지금 여기에 현존하라
생각하는 사람을
지켜보는 대신
지금 이 순간(Now)에
온전히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흐름을 멈출 수 있다.
강렬한
의식을 지닌 채
그저 지금 이 순간에
완전히 집중하라.
이렇게 하면 깊은 만족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의식을 마음의 활동으로부터 멀리 떼어놓고, 극도로 또렷하게 깨어 있지만 생각은 하지 않는 무심(無心)의 공백이 생긴다. 이것이 명상의 본질이다.
일상생활에서
늘 하던 행동을 하되
그 행동에 모든 주의를
집중하는 것으로 이 훈련을
할 수가 있다.
그저 목적을 위한 수단에 불과한 평범한 행동이 그것에 집중하는 순간 그 자체가 목적이 된다. 예를 들어 집이나 직장에서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당신이 내딛는 모든 걸음걸음에, 모든 동작에, 심지어는 호흡에도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보라.
손을 씻을 때에도 물소리, 물의 느낌, 손의 움직임, 비누향기 등 손을 씻는 행위와 관련된 모든 감각에 집중해 보라. 자동차를 탈 때에도 차 문을 닫고 잠시 모든 동작을 멈춘 채 당신의 호흡을 느껴보라. 그리고 고요하지만 강력한 현존의 감각을 알아차려라. 내면의 평화가 느껴지는가?
그 순간에
온전하게 존재하라.
지혜는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존재의 심연에는 이미
지혜가 있다. 그것을 끌어다
쓰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그저 앞에 있는 사람이나 사물에
전념(專念)하는 것이다.
오로지 현재 순간에만
주의를 집중하라!
전념(Attention)은 원초적 지혜이며 순수의식 그 자체이다. 전념은 개념적 사고가 만들어낸 장벽을 녹여 없애고 그로 인해 이 세상 아무것도 홀로 분리되어 존재할 수 없음을 알게 해준다.
|

유일하고 진정한 자유
자유로 향하는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현재 순간이다.
그러나 자신이 곧 마음이라고 믿고 있는 한, 현재 순간을 발견할 수 없다.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나=생각’이라는 ‘동일시’를 버리고 생각에 완전히 지배당하지 말라는 것이다.
머릿속에서 나인 '척하며' 수다를 그칠 줄 모르는 목소리가 있음을 알아차릴 때, 생각의 흐름이 곧 나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던 과거의 꿈에서 나는 깨어난다. 그때 나는 깨닫는다.
나의 본모습은
그 목소리가 아니며,
생각하는 사람도 아니며
다만 그 목소리를 알아차리는
'알아차림' 자체임을.
마음에서
벗어나는 것이야말로
유일하고 진정한 자유이다.

자신을 마음과
동일시하지 않는 법을 배우라.
그것은 깨달음을 향한 여행에서
반드시 거쳐야 할 단계이다.
마음의 흐름이 끊어질 때마다
의식의 빛은 더 강해진다.
마치 아이의 재롱에 미소 짓는 것처럼, 어느 날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미소 짓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는 마음이 만들어내는 목소리를 더 이상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충동적으로
생각에 잠길 때마다
당신은 현실을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이 있는
‘지금 여기’를 피하고 싶은 것이다.

에고(Ego)란
마음과 자신을
무의식적으로 동일시할 때
생성되는 거짓 자아를 가리킨다.
에고는
마음의 활동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므로,
우리가 끊임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할 때에만 존재할 수 있다.
에고에게는 현재의 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에고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과거와 미래다. 이처럼 진리에 역행하는 에고의 상태에서는 당신의 마음이 제대로 기능할 수 없다.
또한 에고는 과거를 항상 생생하게 살아있게 유지하려고 한다. 과거가 없다면 자신이 누구인지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끊임없이 자신을 미래에 투영하면서 지속적으로 생명을 유지하고, 그 속에서 해방감이나 성취감을 얻고자 한다. "언젠가 이런저런 일이 생기면, 나는 괜찮을 거야. 행복하고 평화로워질 거야"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심지어 에고가 현재와 관련이 있을 때조차도 에고는 현재의 순간을 보지 않는다. 에고는 과거의 시각으로 현재를 보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을 온전하게 인식하지 못한다. 마음이 투영하고 있는 미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현재의 순간을 축소하기 때문이다. 당신의 마음을 관찰해보면 에고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 수 있다.
자유로 향하는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현재의 순간이다.
그러나 자신이 곧 마음이라고 계속
믿고 있는 한, 현재의 순간을
발견할 수 없다.
|

생각하는 마음을 넘어서
근원적
어리석음은 무엇인가?
'나=생각'이라는 믿음이다.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은 바로
생각이라는 꿈에서 깨어나는 것이다.
깨달음은
생각을 딛고 솟아오른다.
깨달음의 상태에서도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생각하는 마음을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전보다 훨씬 더 집중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사용하게 될 것이다. 실용적인 목적으로 생각하는 마음을 사용하지만, 당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들려오는 머릿속의 목소리에서 자유로워져서 내면의 고요를 항상 유지할 수 있다.

생각이 만든 감옥에
갇혀버리기는 얼마나 쉬운가!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의 생각이라는 감옥에
갇혀서 일생을 살아간다. 그래서
과거에 얽매이고, 생각이 지어낸 좁은
자아상을 넘어서지 못한다.
생각이 만들어낸 '작은 나'가 삶을 지배할 때 나와 세상을 동시에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하지만 나의 실체를 발견하고 나면 세상과 나는 동시에 고통에서 놓여난다. 오직 내 안에 존재하는 걸림 없는 '순수의식'을 통해서만 사랑과 기쁨, 지속적인 마음의 평화가 삶 속으로 들어오고 나는 '큰 나'가 될 수 있다.
아주 가끔이라도 마음속에 지나가는 생각을 '그저 생각일뿐'이라고 인식할 수 있다면, 나의 감정이 주어진 상황에 대립하는 양상을 '초연히 지켜볼 수' 있다면, 순수의식이 이미 '알아차림'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나의 생각과 감정은
바로 그 안에서 생겨난다.
시간을 초월한 그곳 내면의 허공에서
나의 삶을 채우는 모든 내용물이 생겨난다.
생각은 계곡의 물살처럼 거세게 흘러가고 나는 자신도 모르는 새 생각 속에 휩쓸려간다. 모든 생각들은 하나하나가 다 '내가 제일 중요해'라고 말하며 나의 마음을 송두리째 앗아가려 한다. 그럴 때는 다음을 기억하라.
'생각을 지나치게 중요하게 여기지 말라.'
그것은
당신을 위한
새로운 영적 수행이다.

당신 안에는
생각을 넘어선 깊은
의식의 차원이 존재한다.
당신의 실체인 그것을 걸림 없는
순수의식(consciousness)이라고도 하고
알아차림(awarenes)이라고도 하며
현존(presence)이라고도 한다.
알아차리는 현존인
순수의식의 영역은 생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드넓다.
다가오는 생각들을
모두 다 믿지는 않게 되는 그날,
당신은 생각이라는 감옥에서 한 걸음 나와
생각하는 사람이 당신의 본모습이
아니란 걸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
'알아차림'(awareness)의
통합장 속에서 인식하는 자와
인식되는 것은 하나가 된다.
‘너’와 ‘나’로 나뉜 것들,
모든 분리된 것들은
치유된다.
☀

|
| ☀042.마음은 현재를 알지 못한다 (0) | 2022.08.03 |
|---|---|
| ☀041.마음의 주인이 되라 (0) | 2022.07.21 |
| ☀039.문제아를 믿지 말라 (0) | 2022.07.12 |
| ☀038.마음으로부터의 자유 (0) | 2022.07.11 |
| ☀037.지켜보는 자로 머물라 (0) | 2022.07.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