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스트웨이①행복명상/행복명상

☀032.명상과 자아탐구

행복♡24 2022. 7. 1. 22:02

명상과 자아탐구

☀레스터 레븐슨 {깨달음 그리고 지혜1}☀


‘나’의 근원을 찾는 것이야말로, ‘참나’를 깨닫기 위한 유일한 수행이자 깨달음을 얻는 직접적인 방편이다. 그것은 개가 냄새를 쫓아 자신의 주인을 찾아가는 것과도 같다. ‘나’라는 생각의 근원을 계속해서 깊이 탐구해 들어가다 보면, 반드시 ‘참나’의 순수의식을 깨닫게 된다. 마음은 오로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탐구함으로써만 다스릴 수 있다. 불을 지피고 이리저리 뒤집다가 마지막에는 자신도 불길에 던져지는 화장터의 막대기처럼, “나는 누구인가?”라는 생각은 다른 모든 생각들을 소멸시킨 뒤에, 마지막에는 그 자체도 소멸된다. ‘참나’를 깨닫고 나면 더 이상 알아야 할 것이 없다. ‘참나’는 완전한 지복(至福)이자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라마나 마하리쉬

가장 행복한 상태, 무심(無心)

진정으로 행복한 상태는 생각이 없는 상태이다. 그건 앎의 상태로, 생각 너머에 있다. 우리는 아무 생각이 없을 때 가장 행복하다. 가끔 몸을 움직여 일할 때 아주 행복한 기분을 느끼는 것도 그 때문이다. 생각이 잠잠해지니까 그런 것이다.

우리는 사실 생각을 원하지 않는다. 생각은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행복한 생각조차 우리를 불행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뭔가를 즐기고 있을 때 우리는 그 즐거움을 계속 유지시킬 수 있을지를 궁리하게 되기 때문이다. 우린 그것이 오래 지속되지 않을 걸 알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즐거운 생각은 그것이 오래 지속되지 않으리라는 생각도 동시에 불러온다. 행복한 생각조차 한계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무심(無心)은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시작이다. 모든 생각이 그치고 단순히 침묵만이 있을 때, 모든 것이 완전히 정지할 때, 새로운 차원의 문이 열린다. 아무 것도 움직이지 않고 모든 것이 멈춘다. 시간이 멈춘다. 그대는 단순히 현재 속에 있다. 그러한 굉장한 순간에 ─ 그것은 그대 삶에서 가장 생생하게 살아있는 순간이다 ─ 그대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다시 태어난다. 옛 사람과의 연결고리가 완전히 끊어져 버린다. 무심이 곧 지복(bliss)이고 평화(peace)이며 자각(awareness)이다.”─오쇼 라즈니쉬

명상의 으뜸가는 목적, 침묵

우리가 자신의 무한함을 못 보게 만드는 유일한 것은 마음이다. 마음은 제약적인 생각들의 집합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인 무한한 있음을 볼 수 있도록 명상으로 마음을 고요히 침묵시켜야 한다. 

명상의 으뜸가는 목적은
마음을 고요히 침묵시키는 것이다.

하나의 생각을 붙잡고 궁구(窮究. quest)하면 다른 생각들은 하나씩 하나씩 떨어져 나간다. 한 생각을 붙들고 있으면 잠재의식의 생각들은 잠잠해진다. 그것들은 배경으로 가라앉고, 그러면 마음이 고요해진다. 

가장 좋은 형태의 명상은
의문을 가지고 하는 명상이다.

의문 없이 그저 고요한 상태에 들면 기분은 좋지만 앎을 얻는 데는 아무 진전이 없다. 고요한 상태로 가고 있다는 점에서는 진전이 있다. 고요한 상태는 소란한 상태보다 나으니까. 그런 의미에서는 그것은 한 걸음 나아간 단계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처해있는 큰 문제는 ‘무지’(ignorance)라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이 무한하다는 사실에 무지하다. 이 무지를 없애려면 자신의 무한함에 대한 앎이 있어야 한다. 그 앎을 얻으려면 의문을 가지고 답을 궁구해야 한다. 명상에 들어서 평화로운 침묵 속에 있으면 그것도 좋다. 하지만 거기서 멈추지 말라. 그 너머로 가서 답을 얻으라.

더 빠른 성장을 위해서는 의문을 가지고 명상해야 한다. 그러니 가장 빠른 길을 가려면 결국 언젠가는 답을 얻어야만 할 ‘나는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가지고 출발해야 한다. ‘나는 무엇인가?’ 하는 의문에 대한 답만이 우리를 정상으로 데려다 준다. 오로지 자신이 무엇인지, 누구인지를 온전히 깨달을 때만 길의 끝에 다다를 수 있다. 

그러니
가장 빠르고 좋은 명상법은
의문을 품고, 답이 스스로 나타날 때까지
마음을 고요히 가라 앉히고 앉아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모든 의문에 대한 답을
다 얻을 때까지 계속 의문을
궁구하는 것이다. 

“내가 말하는 '의도적인 몰입'은 단 1초도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오로지 풀리지 않는 문제에 대해 생각하는 극단적인 시도 끝에 펼쳐지는 새로운 정신세계에 관한 것이다. 모든 시간과 마음을 다해 오로지 주어진 문제 하나만을 생각하는, 바로 그런 몰입 상태 말이다. 이런 지극한 몰입 상태에 이르면 몇 날이고 몇 주일이고 내내 그 생각만 하고, 그 생각과 함께 잠이 들었다가 그 생각과 함께 잠이 깬다. 이런 몰입 상태에서는 문제 해결과 관련된 새로운 아이디어가 끊임없이 떠오른다. 몰입적 사고야말로 잠재되어 있는 우리 두뇌의 능력을 첨예하게 깨우는 최고의 방법이며 나 스스로 창조적인 인재가 되는 지름길이다.”─황농문《몰입》
강렬한 열망으로 시작하라

출발점은 답을 얻고자 하는 강렬한 열망이다. 열망이 강렬하면, 답을 얻는다. 이 때문에 인간의 궁지가 신에게는 기회가 되는 것이다. 극도의 저항은 거기서 벗어나고자 하는 강렬한 욕구를 일으키고, 그래서 우리는 마음을 집중하여 답을 찾아낸다. 오로지 답을 얻고자 하는 강렬한 욕망의 강도가 핵심이다. 

생각하는 자와
생각이 하나가 될 때
이 같은 몰입 상태가 된다.
그는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오로지 하나의 생각만을 의식한다.
그것은 매우 집중된 마음 상태로,
답은 언제나 바로 거기서
발견된다.

마음을 침묵시키는 데에 가장 중요한 것은 호기심이다. 어떤 것에 호기심이 깊어지면 다른 생각은 모두 뒷전으로 물러난다. 마찬가지로 강렬한 호기심으로 ‘나는 무엇인가? 이 세상은 무엇인가? 나는 세상과 무슨 관련이 있는가?’라는 의문의 답을 알고 싶은 마음이 불같이 타오르면 다른 모든 생각은 떨어져나가고 마음은 극도로 집중된 상태가 된다. 그러면 답이 스스로 나타난다.

그것은
내면으로부터 나온다.
답은 늘 거기에 있다. 생각을
침묵시키면 그것이 드러난다.
앎(Knowingness)의 영역
- 참자아의 영역 - 에 늘 있던
그 답을 깨닫게 해준다.

결코 억지로 마음이 텅 비게 만들려고 애쓰지 말라. 삶에서 뭔가를 강렬하게 원한다면 당신은 이미 그것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건 모든 사람에게 그렇고 모든 것이 그렇다. 구도의 길도 마찬가지다. 답을 얻고자 하는 갈망이 얼마나 강렬한지가 난이도를 결정한다. 그게 모든 것의 핵심이다. 

“몰입의 과정은 화두 하나만을 붙들고 오로지 그것만을 집요하게 생각하는 참선수행과 비슷하고, 몰입은 삼매와 대단히 유사하다. 참선수행을 하는 스님들은 앉으나 서나 한결같이 그 생각만 한다고 하여 '동정일여(動靜一如)', 꿈속에서도 그 생각만 한다고 하여 '몽중일여(夢中一如)', 깊은 잠 속에서도 그 생각만 한다고 하여 '숙면일여(熱眠一如)'를 행한다. 이때 의식을 한 가지에 집중하는데, 집중하는 대상을 '화두'라고 하고, 이러한 참선을 '화두 선'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수행을 통해 의식이 다른 잡념의 방해를 받아 끊기는 일 없이 오로지 하나의 화두에 집중하는 상태를 '삼매(三昧)'라고 한다. 삼매는 인도 산스크리트어인 사마디(samadhi)를 음으로 번역한 것으로, 나와 내가 의식하는 대상이 일치가 되는 상태를 뜻한다. 불교의 수행 방식인 화두 선의 삼매와 상당히 유사한 이 상태에서는 지극히 행복한 감정을 느끼며, 평상시에는 떠오르지 않던 기적과 같은 영감이나 아이디어가 샘솟듯이 떠오른다. 몰입은 문제해결이나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그리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실천 가능한 '두뇌활용법' 이다.”황농문《몰입》

나는
‘나는 무엇인가?’라는
단 하나의 의문을 붙들고
답을 얻을 때까지 궁구했고,
이 의문을 줄곧 붙들고 오로지
이 의문에만 집중적으로 매달린 덕에
석 달 만에 길의 끝까지 갔다.

나는 의문에 너무나 강렬히 집중하는 바람에 세상과 몸에 대한 인식을 잃어버렸고 그저 하나의 순수한 생각에만 의식이 몰두되어 그 생각만이 우주에 존재하는 유일한 것이 되었다.

당신은
온 세상이
당신 자신 외의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오로지 당신 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오로지 하나만이 존재하고,
당신이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최후의 경지는 아니다. 거기서 나오면 아직도 마음이 어느 정도 남아있다. 그래서 당신을 지배하는 마음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때까지 다시 명상 속의 궁구로 들어간다. 

명상은 많이 할수록 쉬워진다.
탄력이 생기면 마음은 더욱더 고요해지고
마침내 한계 없는 자아가 뚜렷이 나타나
당신을 지켜볼 때 당신은
웃음을 터뜨리게 될 것이다.

생각의 모든 습관과
마음의 모든 성향이 제거되면
당신은 자유다. 그러면 당신은
마음을 사용할 수 있다.

이제 당신은
마음의 주인이요 지휘관이다.
더 이상 마음이 당신을
결정하지 않는다.
당신이 마음을 결정한다.

“마음의 주인이 되라. 마음을 이용하되, 마음에게 이용당하지는 말라. 신성을 경험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은 오직 하나, 마음을 옆으로 치우는 것이다. 끊임없이 재잘거리는 마음, 아무 이유도 없이 계속 돌아가는 이 미친 마음을 멈추기 위한 전략이 바로 명상이다. 마음을 멈추는 법을 아는 순간, 그대는 마음의 주인이 된다. 그리고 그때 마음은 하나의 멋진 기계가 된다. 그 기계가 필요할 때, 그 기계를 사용하고 싶을 때, 그대는 그것을 사용한다. 그리고 그것이 필요 없을 때는 그것을 꺼둘 수 있다. 그대가 주인일 때, 마음은 훌륭한 하인이다. 그것은 존재가 준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다. 하지만 마음이 주인일 때, 그것은 재앙이다.”─오쇼 라즈니쉬

“나는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수준의 일을 하도록 자신을 채찍질하지 않으면 결코 내 안에 숨겨져 있는 잠재력을 끄집어낼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힘을 보태고 있었다. 잘못하면 죽도 밥도 안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긴장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주어진 문제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이런 태도는 나를 완전한 몰입 상태로 이끌었다. 그리고 몰입을 오랜 시간 유지하면서 두뇌 활동의 극대화와 지고의 즐거움을 동시에 경험하게 되었다. 모진 가시밭길일 것이라고 예상했던 그 길이 '천국으로 가는 길'이었던 것이다.”황농문《몰입》